숨막힌 청춘,50대 제친 20대 우울증[동아일보]○ 취준생도, 사회 초년생도 ‘우울’ ○ 치료도 못 받고 방황하는 청춘
김단비기자 , 정지영기자 입력 2017-04-04 03:00
“까똑.”
지난달 31일 오후 충북 충주시 K병원 신경정신과 진료 대기실. 메시지 알람이 울리자 진료를 기다리던 박모 씨(29·여)의 심장이 마구 뛰었다. 박 씨는 황급히 가방에서 책 한 권을 쫓기듯 읽었다. 박 씨는 의사에게 “카톡 알람 소리가 울릴 때마다 숨이 가빠진다”고 털어놨다.
박 씨는 신경정신과를 찾기 전 대안으로 소위 ‘청년 위로서’로 불리는 베스트셀러를 찾아 읽었다. 읽는 동안 좌절감이나 우울감은 어느 정도 줄었다. 하지만 책을 놓으면 불안감이 엄습했다. 의사는 “상담자의 30% 이상이 청년”이라며 “박 씨처럼 매일 계속된 우울과 분노 초라함 억울함 등 때문에 일상생활이 흔들리는 청년이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 취준생도, 사회 초년생도 ‘우울’
청년들의 마음이 병들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에 좌절을 반복하는 취준생(취업준비생)도, 어렵게 취업문을 뚫은 사회 초년생 중에도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가 늘고 있다.
3일 본보가 정신건강의 날(4일)을 맞아 최근 4년간 보건복지부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1년 중 2주 이상 우울감과 절망감을 경험했다”는 청년(19∼29세)이 2012년 9.3%, 2015년 14.9%로 증가했다. 과거 비중이 가장 컸던 50대는 같은 기간 15.0%에서 13.1%로 감소했다. 또 우울증과 조울증 등 기분장애로 병원을 간 20대는 2013년 6만948명에서 2년 뒤인 2015년 6만6188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50대는 오히려 5175명 줄었다.
사회 초년생은 취업 준비 때 겪었던 좌절과 불안 등이 취업 후 기대와 동떨어진 근무환경에 맞닥뜨렸을 때 계속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박차고 나올 용기도 없어 속으로 끙끙 앓다가 병을 키우기도 한다. 박 씨가 딱 그렇다. 입사 3개월의 박 씨는 최근 한 달째 오후 9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없다.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는 선배들 때문이었다. ‘일을 배우라’는 부장 지시에 여기저기 불려가기 일쑤다. 야근수당은 따로 없다. 언제부턴가 동료·상사들과 점심을 먹으면 체할 때가 많았다. 두통약을 달고 살았다. 체중은 최근 일주일 새 3kg 빠졌다. 알 수 없이 몸이 아프고 실수도 늘어났다. 무엇보다 휴대전화가 울릴 때마다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다. 박 씨가 신경정신과를 찾은 이유다.
유모 씨(30)는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지인들에게 연락해 술 약속을 잡는다. 하지만 정작 퇴근 이후 그의 발길은 집으로 향한다. 애써 잡은 약속은 모두 취소했다. 유 씨는 “퇴근할 때쯤 되면 기분이 좋아지다가 막상 퇴근하면 꺼질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자기계발에 병적으로 집착하면서 몸을 혹사시키는 경우도 있다. 취준생 생활을 오래 한 경우에 나타난다. 박모 씨(33)는 스피치 학원과 중국어·영어 학원, 노래 학원 등 네 곳을 다니고 있다. 그는 “입사 동료들보다 나이가 많다. 동료들이 나이도 많은데 일 못하고 분위기도 모른다는 뒷담화를 하는 것 같아 각종 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한효은(가명·30) 씨는 고교 3학년 때 평판이 낮은 서울 소재 대학과 유명 사립대 지방 캠퍼스 진학을 놓고 고심했다. 선택은 후자였다. 하지만 그는 서른 살이 되도록 취업을 못했다. 그리고 10년 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 진학 결정 때 자신에게 조언한 담임교사와 부모까지 원망하고 있다. 한 씨는 “1년째 부모님을 안 보고 살고 있다. 그 당시 ‘○○학과 가라’ ‘어느 대학 가라’고 말해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것 같아 부모님 얼굴만 보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한 씨는 얼마 전 기분장애 진단을 받았다.
○ 치료도 못 받고 방황하는 청춘
“견디다 보면 나아지겠죠.” 진료실을 나선 최모 씨(31)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는 기분장애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최 씨는 병원을 다시 찾을 생각이 없다. 그저 ‘상사 목소리만 들어도 짜증나고 밤마다 잠을 설치는’ 증상이 그저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질병인지 확인만 하고 싶었다. 최 씨는 “직장 부적응도 결국 내 탓”이라며 자신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러면서 괜히 취업하지 못한 다른 친구들 눈치를 탓했다. 취준생 친구들이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배부른 투정’으로 볼까 걱정하는 것이다. 서정석 건국대 충주병원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사치로 느낀 청년들이 병적으로 자기계발에 집착하고 제2, 제3의 대안을 찾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병을 키워 다시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래서 병원 대신 타인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민간심리센터를 찾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일부 민간센터의 경우 충분한 치료 효과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3, 4개월이면 딸 수 있는 심리자격증만 갖춘 상담사가 나오거나 구체적인 해결책보다 “침착하게 기다리세요”라는 식의 추상적인 조언에 그치는 곳도 있다.
취준생 김모 씨(29·여)도 2년 넘게 계속된 구직 준비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감을 느끼고 서울 마포구의 한 심리상담 전문가를 찾았다. 돌아온 답변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는 말이었다. 그는 “3회 상담 동안 약 30만 원과 시간까지 들인 걸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며 “우울증이 더 심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민간심리센터의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이용자 보호 차원에서 상담 전문가의 수준과 치료 환경 등에 대한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창수 고려대안산병원 교수는 “최악의 실업률과 장기 불황, 세대 간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청년 우울증이 증가하고 있다”며 “청년들이 정신적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사회 각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단비 kubee08@donga.com·정지영 기자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404/83675384/1#csidxd6aafa5fae75521a50577adaeaac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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