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30일 일요일

KBS 2018년 4분기 정년퇴임식,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희망찬 새출발을 축하드립니다. #Retirement #Ceremony #KBS #양승동사장 #한국방송   시간: 2018.12.20.(화) 10:00~ 장소: 시청자광장 ( 본관 로비 ) 식순 . 국민의례 . 재직공로패, 꽃다발 증정 . 퇴임 선배님 소감 . 사장님 말씀 . 축하 연주 . 기념사진 촬영 퇴임자 성명 오영철 이은미 김성수 우동혁 임대배 윤종배 동중우 양기성 최재학 유신열 정창훈 김민수 구수환 최태엽 김상우 한혜련 정혜실 박귀병 김택환 김재연 김국원 최재환 김남섭 윤혜숙 이숙자 정해석 서명환 김흥배 배도엽 맹성수 정용조 김두식 이봉재 최무열 남인식 김용열 조인곤 노미선 이해경 최학석 최경수 김두희 방호근 최종림 ​ 전달: #KBS강성실

KBS 2018년 4분기 정년퇴임식,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희망찬 새출발을 축하드립니다. #Retirement #Ceremony #KBS #양승동사장 #한국방송  


시간: 2018.12.20.(화) 10:00~

장소: 시청자광장 ( 본관 로비 )
식순
. 국민의례
. 재직공로패, 꽃다발 증정
. 퇴임 선배님 소감
. 사장님 말씀
. 축하 연주
. 기념사진 촬영
퇴임자 성명
오영철 이은미 김성수 우동혁 임대배
윤종배 동중우 양기성 최재학 유신열
정창훈 김민수 구수환 최태엽 김상우
한혜련 정혜실 박귀병 김택환 김재연
김국원 최재환 김남섭 윤혜숙 이숙자
정해석 서명환 김흥배 배도엽 맹성수
정용조 김두식 이봉재 최무열 남인식
김용열 조인곤 노미선 이해경 최학석
최경수 김두희 방호근 최종림

전달: #KBS강성실

2018년 12월 26일 수요일

내게 강같은 평화, 성탄절 이브 #조원감리교회 #청년부 율동  #연응찬  #methodistchurch #MerryChristmas #God #Jesus #Holyspirit https://youtu.be/Q-v0YZQIgxg

내게 강같은 평화, 성탄절 이브 #조원감리교회 #청년부 율동  #연응찬  #methodistchurch  #MerryChristmas  #God #Jesus #Holyspirit 


https://youtu.be/Q-v0YZQIgxg

2018년 12월 25일 화요일

2018년 12월 18일 화요일

운배영 거북이영어교실_BTS RM's UN speech 1부 @BTS_twt #방탄소년단 #유엔연설 #UNspeech 앞 단어만 들어도 다음에 무슨 말을 할 건지 알고 듣는 거랑, 듣고 해석하며 따라가는 거랑 게임이 될까요?, #BTS #RM's #UN speech 1부 #운배영 –68 #거북이영어교실 - #Unbaeyoung https://youtu.be/dWDR0bDGi1o   It is an incredible honor to be invited to an occasion. with such significance for today’s young generation Neither did I. We became like ghosts. Even after making the decision to join BTS, ​

운배영 거북이영어교실_BTS RM's UN speech 1부

@BTS_twt #방탄소년단 #유엔연설 #UNspeech

앞 단어만 들어도 다음에 무슨 말을 할 건지 알고 듣는 거랑, 듣고 해석하며 따라가는 거랑 게임이 될까요?, #BTS #RM's #UN speech 1부

#운배영 –68 #거북이영어교실 - #Unbaeyoung

https://youtu.be/dWDR0bDGi1o

 

It is an incredible honor to be invited to an occasion.

with such significance for today’s young generation

Neither did I.

We became like ghosts.

Even after making the decision to join BTS,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김연자(Kim Yeon Ja) - 아모르 파티, Amor Fati 작사: #이건우 , #신철 작곡: #윤일상 편곡: #윤일상 #김연자 #KimYeonJa #아모르파티 #AmorFati #KBS #한국방송 #KBSconcert7080 https://youtu.be/kn0Xzuzi-C8 아모르 파티 가사- 노래 김연자, 작사: 이건우 , 신철 작곡: 윤일상 편곡: 윤일상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하지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인생이란 붓을 들고 서 무엇을 그려야할지 고민하고 방황하던 시간이 없다면 거짓말이지 말해 뭐해 쏜 화살처럼 사랑도 지나갔지만 그 추억들 눈이 부시면서도 슬프던 행복이여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대로 가면 돼 이제는 더이상 슬픔이여 안녕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대로 하면 돼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말해 뭐해 쏜 화살처럼 사랑도 지나갔지만 그 추억들 눈이 부시면서도 슬프던 행복이여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대로 가면 돼 이제는 더이상 슬픔이여 안녕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대로 하면 돼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 김연자(Kim Yeon Ja) - 아모르 파티, Amor Fati

작사: #이건우 , #신철 작곡: #윤일상 편곡: #윤일상

#김연자 #KimYeonJa #아모르파티 #AmorFati #KBS #한국방송 #KBSconcert7080

https://youtu.be/kn0Xzuzi-C8


아모르 파티 가사- 노래 김연자,

작사: 이건우 , 신철 작곡: 윤일상 편곡: 윤일상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하지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인생이란 붓을 들고 서 무엇을 그려야할지

고민하고 방황하던 시간이 없다면 거짓말이지

말해 뭐해 쏜 화살처럼 사랑도 지나갔지만

그 추억들 눈이 부시면서도 슬프던 행복이여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대로 가면 돼

이제는 더이상 슬픔이여 안녕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대로 하면 돼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말해 뭐해 쏜 화살처럼 사랑도 지나갔지만

그 추억들 눈이 부시면서도 슬프던 행복이여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대로 가면 돼

이제는 더이상 슬픔이여 안녕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대로 하면 돼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플라톤아카데미TV – 어떻게 살 것인가? 8강. #톨스토이 (Lev Nikolayevitch #Tolstoy ), 성장을 말하다 ( #고려대 #석영중 교수) 러시아 백작 톨스토이는 누구인가? 귀족, 경제적 지위 남부럽지 않고 장수하였다. 톨스토이는 대단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농촌에 학교도 세움. 톨스토이는 그저 아름답고 그저 즐겁기만 했던 것을 원하지 않았다. 예술은 어떤 실용적 목표가 있어야 했습니다. 톨스토이 평생 어떻게 살것인가를 독자에게 말하려고 하였기에 그의 소설은 쉽게 썼습니다. 톨스토이 35세에 16세 연하 소피아 베르스와 결혼하였습니다. 위대한 출산으로 13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지금 톨스토이의 후손은 약 200여명입니다. 이 48년 결혼 생활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엄청 싸웠다고. 최악의 불행이 성장의 밑거름이 된거죠 ‘회심’ 일생일대의 사건. 나이 50세에 부와 명예와 모든 것을 다 가지게 됩니다.     ‘전쟁과 평화’로 러시아의 대작가. 그의 마음속에서 찬바람이 불고 서늘해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는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오열합니다. “참회록” 책을 씁니다. 이후 평생 참되게 살기로 몰입합니다. ’안나 카레리나‘ 1887년 회심 바로 직전에 쓰여집니다. “레빈”이란 청년을 자기의 분신으로 삼은 글을 씁니다. 라디오, TV, 연극, 발레 등 다양한 장르로 창조됩니다. 안나 카레리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고위관료의 아내. 위기에 처한 오빠를 돌보기 위해 모스크바로 가게 됩니다. 미모의 유부녀 안나와 잘생긴 청년 브론스키와의 만남.     레빈은 키티를 좋아하고 키티는 브론스키를 좋아하고 브론스키는 안나를 좋아하는 관계가 됩니다. 미인에 잘생긴 사람들의 만남은 나중에 비극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레빈과 키티는 나중에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잘하게 됩니다. 레빈의 말과 행동이 모두 톨스토이를 반영합니다.     책 첫머리에서 “모든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라고. 톨스토이는 모든 인간 앞에는 고뇌, 망각, 죽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레빈은 노인을 만났고 그 노인은 말하기를 “우리는 그냥 사는 것이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라고 말을 해줍니다. 톨스토이는 선하게 사는 것에서 죽음의 단초를 발견하게 됩니다. 톨스토이의 해법은 “죽음을 기억하라” “오늘밤까지 살라. 동시에 영원히 살라.” 죽음을 기억하는 것 만큼, 현재와 오늘이 더욱 소중해 지는 것이라는 것을. ​ https://youtu.be/IKZyubdVUIk ​ ​

#플라톤아카데미TV – 어떻게 살 것인가? 8강. #톨스토이 (Lev Nikolayevitch #Tolstoy ), 성장을 말하다 ( #고려대 #석영중 교수)

러시아 백작 톨스토이는 누구인가? 귀족, 경제적 지위 남부럽지 않고 장수하였다. 톨스토이는 대단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농촌에 학교도 세움.

톨스토이는 그저 아름답고 그저 즐겁기만 했던 것을 원하지 않았다.

예술은 어떤 실용적 목표가 있어야 했습니다. 톨스토이 평생 어떻게 살것인가를 독자에게 말하려고 하였기에 그의 소설은 쉽게 썼습니다.

톨스토이 35세에 16세 연하 소피아 베르스와 결혼하였습니다.

위대한 출산으로 13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지금 톨스토이의 후손은 약 200여명입니다.

이 48년 결혼 생활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엄청 싸웠다고.

최악의 불행이 성장의 밑거름이 된거죠

‘회심’ 일생일대의 사건. 나이 50세에 부와 명예와 모든 것을 다 가지게 됩니다.

   

‘전쟁과 평화’로 러시아의 대작가.

그의 마음속에서 찬바람이 불고 서늘해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는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오열합니다.

“참회록” 책을 씁니다.

이후 평생 참되게 살기로 몰입합니다.

’안나 카레리나‘ 1887년 회심 바로 직전에 쓰여집니다.

“레빈”이란 청년을 자기의 분신으로 삼은 글을 씁니다.

라디오, TV, 연극, 발레 등 다양한 장르로 창조됩니다.

안나 카레리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고위관료의 아내.

위기에 처한 오빠를 돌보기 위해 모스크바로 가게 됩니다.

미모의 유부녀 안나와 잘생긴 청년 브론스키와의 만남.

   

레빈은 키티를 좋아하고 키티는 브론스키를 좋아하고 브론스키는 안나를 좋아하는 관계가 됩니다.

미인에 잘생긴 사람들의 만남은 나중에 비극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레빈과 키티는 나중에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잘하게 됩니다.

레빈의 말과 행동이 모두 톨스토이를 반영합니다.

   

책 첫머리에서 “모든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라고.

톨스토이는 모든 인간 앞에는

고뇌, 망각, 죽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레빈은 노인을 만났고 그 노인은 말하기를

“우리는 그냥 사는 것이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라고 말을 해줍니다.

톨스토이는 선하게 사는 것에서 죽음의 단초를 발견하게 됩니다.

톨스토이의 해법은

“죽음을 기억하라”

“오늘밤까지 살라. 동시에 영원히 살라.”

죽음을 기억하는 것 만큼, 현재와 오늘이 더욱 소중해 지는 것이라는 것을.


https://youtu.be/IKZyubdVUIk



2018년 12월 9일 일요일

[최보식이 만난 사람] "영장(令狀) 기각돼 오늘 휴대폰 돌려받고… 세종시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과의 生前 마지막 통화] =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8.12.10 03:13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과의 生前 마지막 통화] 기억 안 나지만 다 인정하겠다, 시시콜콜 따져봐야 소용없어 그 상황서 사령관이 해야 할 직무의 정당성·적법성 주장했다     ​ 나는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됐다. 경찰에서 확인했듯이 통화 시각은 7일 오후 1시 29분이었다.     내가 전화를 걸었고 긴 신호음 끝에 그가 나왔다.     "아, 최 기자님…."     "며칠 전 전화를 했는데 안 받더군요. 그때 휴대폰이 검찰에 압수된 상태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예, 영장이 기각돼 오늘 휴대폰을 돌려받았습니다. 그동안 꼼짝 못 하다가 세종시에 있는 집사람(교사로 재직)이 바람도 쐴 겸 오라고 해서 지금 내려가 보려고 합니다."     "걱정 많이 했는데 그나마 다행입니다. 검찰에서 영장을 다시 청구하지는 않겠지요?"     "검찰이 이번에 영장이 기각된 대법관(박영대·고영한) 쪽으로 힘을 쏟지 않겠느냐고 변호사가 이야기는 했습니다…."     일상적인 대화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서 그가 말했다.     "실은 세종시에 가려고 막 집을 나서다가 제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기분 전환도 하시고."     이게 생전의 마지막 통화였다. 1시간 20분 뒤 그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시간 계산을 해보면 그때 그는 유서가 든 가방을 들고 자신이 살던 건국대 근처 오피스텔을 나서던 중이었던 것 같다. 이날 그는 자신의 변호인들에게도 "세종시에 내려가도 되느냐?"고 물었다고 하는데, 세종시로 가지 않고 서울 문정동에 있는 지인의 사무실로 향했던 것이다.  ​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생전에“기무사가 이렇게 국민의 지탄을 받아야 하는 조직이었나, 나로서는 자괴감과 회의감이 들 정도다”라고 말했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생전에“기무사가 이렇게 국민의 지탄을 받아야 하는 조직이었나, 나로서는 자괴감과 회의감이 들 정도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DB 그는 박지만씨의 고교·육사 동기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누나'로 불렀다. 이 때문에 2014년 기무사령관으로 발탁됐을 때 여러 설이 돌았다. 마찬가지로 그가 1년 안 돼 경질됐을 때도 여러 풍문을 낳았다.     그를 알게 된 것은 2년 전이다. 군에서 예편한 뒤였다. 그에 대해 '정치군인' 선입견이 있었는데 만나보니 단정한 학자 같은 인상을 받았다. 직접 만난 건 두 번이지만 통화나 문자 메시지로 가끔 연락하는 관계가 됐다. 내가 신문에 쓴 글을 보고 시국 걱정을 표시해오는 경우도 있었다.     취재 목적으로 그와 길게 통화한 적은 한 번 있었다. 7월 31일이었다. 나흘 전 문재인 대통령이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과 계엄령 검토는 그 자체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이고 불법적 일탈 행위'라고 말하면서 국방부 특별수사단의 기무사 수사가 탄력을 받던 시점이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 의혹'이 기정사실로 굳어진 것 같다. 우선 기무사 요원들은 왜 세월호 현장에 있었나?     "당시 해군 등 전군(全軍)에서 병력과 장비가 대거 투입됐다. 군 병력이 움직이면 당연히 기무부대도 파견된다. 현장에서 군 임무 수행과 관련된 문제를 파악하고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는 게 역할이다. 세월호 사건 당시 군의 역할은 컸고 이 안에서 기무사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최선을 다했다. 이는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기무사 요원이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서 유족들의 정치 성향과 가족 관계, 음주 실태 등을 파악했고, 안산 단원고 학생을 뒷조사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군의 대민 지원과 관련된 여론과 동향을 파악 보고하는 것은 기무사의 직무에 해당된다. 이를 어떻게 민간 사찰이라 할 수 있나. 기무사는 민간 사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툭하면 그런 사건이 터졌고 이에 대해 문책을 받아왔기 때문에 '사찰하라'는 지시는 있을 수 없었다."     ―이런 직무 활동이 왜 민간인 사찰로 의심받게 됐다고 보나?     "지역기무부대는 대형 재난 상황 발생 시 구성되는 범정부대책위원회의 당연직 멤버다. 실종자 가족들의 불편, 불만 또는 요구 사항도 파악해야 한다. 실종자 가족대책위의 활동을 수첩에 적고 위에 보고한 것을 사찰로 오해한다. 더욱이 이를 '가족대책위에 대한 동향'이라고 하니까 사찰 냄새가 나는 것이다. 이는 정보기관 특유의 관행이다. 내가 '동향' '동정'이라는 오해받을 만한 표현을 쓰지 말고 '상황' '분위기'라고 고치라고 한 적 있었다."     ―민간인에 대한 불법 도·감청을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는 세월호 선사의 주인인 유병언의 소재를 찾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사용됐다. 법무부의 지원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다."     ―기무사령관 시절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하러 청와대를 자주 들어갔다는데.     "한 번도 없었다. 독대하고서 그런 소리를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때는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 시스템이 없었다. 내 전임자 시절에도 없었다. 내가 나온 뒤로는 모르겠다."     ―박지만씨 친구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누나'로 부르는 실세(實勢)였으니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독대를 했을 것으로 본다.     "그런 개인적인 연고를 들어 나를 엮으려고 한다. 1년 채 안 되는 기무사령관직은 군 생활에서 잊고 싶은 기간이다. 좋게 임기를 다 마친 것도 아니고 그 뒤로 무슨 혜택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현 정권에서 수사의 칼날을 피해갈 수 있다고 보나?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진 수사이니 언젠가는 나를 부를 것이다. 기무사가 비판과 오해받을 소지가 있지만 이렇게 뭇매를 맞을 조직이었나, 이렇게 국민의 지탄을 받아야 하는 조직이었나, 잠시나마 사령관을 맡았던 나로서는 자괴감과 회의감이 들 정도다."     ―현 정권에서 벌어지는 소위 '적폐 수사'에서 대부분 인사들이 자기 입장을 밝히지도 못하고 구속됐다. 언론 보도는 검찰을 통해서 나오는 것들이다. 일방적 주장이 기정사실처럼 된다. 그런 상황을 막으려면 당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지 않겠나?     "기무사의 세월호 사건에서 내가 최종 지휘관인데 잘못 대응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가거나 직접 나설 상황이면 그렇게 하겠다."     이 통화가 있고 넉 달 뒤 그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그는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에 출두하면서 "모든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라고 말했다. 영장은 기각됐고, 나흘 뒤 그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변론을 맡았던 석동현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영장은 기각됐지만 검찰 조사는 끝나지 않았다. 당초 소환 조사를 할 때 검찰은 앞으로 어떤 조사를 할 것인지 통보했다. 이 중에는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과 관련된 것도 있었다. 비록 풀려났지만 장차 검찰이 주변까지 먼지 떨이식 수사를 벌일지 모른다는 압박감이 컸을 것이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뉴시스 ―검찰 조사 과정에서 세월호 사건과 상관없는 '별건(別件) 수사'가 있었나?     "그는 군에서 예편한 뒤 블록체인 개발 회사의 고문을 맡았는데, 그 회사로부터 현재 거주하는 오피스텔을 받았다. 검찰이 오피스텔을 압수 수색하면서 그 사실을 알아내고 이에 대해 심문했다. 바로 다음 날에는 그 회사와 오피스텔 명의자에게 전화를 걸어 '왜 제공해줬느냐?'고 캐물었다. 불안해진 회사 측은 그에게 '오피스텔을 비워 달라'고 했다. 그도 자신의 문제로 회사에 불똥이 튈 것을 걱정했다. 영장실질심사 전날까지 그는 집을 구하러 다녔다."     ―이를 두고 검찰이 '별건 수사'를 했다고 할 수 있나?     "오피스텔은 그와 회사 간의 계약이었고, 세월호 사건 조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물론 검찰은 '수사까지 할 계획은 없었다'고 발뺌할 것이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전역 이후 복잡한 정치 상황과 얽혀 제대로 되는 일을 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지금 모처럼 여러 비즈니스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즈음에 이런 일이 발생해 여러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있다.     ―검찰 조사를 받으면 누구나 모멸감을 느끼게 마련이지만, 그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특히 정도가 심한 게 있었나?     "검사가 어떤 사안에 대해 '부하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한 적이 있느냐?' '지시한 적이 없었다는 말이지요?'라는 식으로 모두 진술하게 한 뒤 심지어 이를 직접 그의 손으로 쓰게 했다. 그리고 두세 시간 뒤 이 진술과 상반된 문건을 내밀며 그를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그 검사는 나름대로 뛰어난 심문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나?     "일반 형사 잡범을 상대로 그렇게 해왔는지 모르지만, 아무리 조사받는 피의자라 해도 기본 예의는 지켜줘야 하지 않나. 담당 검사는 30대고, 피의자는 군에서 평생을 바친 예비역 3성 장군이었다. 근거 자료를 제시하며 '이게 무엇이냐?'고 심문하는 게 상식 아닐까. 사실 사령관은 수많은 지시와 보고를 받는 자리다. 몇 달간 지속적으로 올라온 세월호 사건의 모든 보고서에 설사 그의 서명이 있었다 해도 다 기억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검찰 심문 과정에 직접 배석을 했나?     "후배 변호사가 배석했고 나는 보고를 다 받았다. 메모까지 갖고 있다."     ―영장실질심사에서는 직접 변론을 했는데.     "검찰은 그 시기의 기무사 서버를 모두 들여다본 것 같았다. 실질심사 과정에서 검찰은 '6·4 지방선거 이전 국면 전환을 위한 출구 전략 마련' 등과 같은 정치적 해석의 소지가 있는 기무사 보고서를 화면에 띄우면서 설명했다. 그런 뒤 그가 출세 목적으로 세월호 유족 동향을 사찰하도록 지시했다고 연결지었다."     ―지금 검찰은 위험한 집단이 됐다. 그는 어떻게 대응했나?     "기억이 안 나지만 조직에서 이런 지시와 보고가 있었다면 다 인정하겠다고 했다. 시시콜콜 따져봐야 소용없는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 사령관이 해야 할 직무의 정당성과 적법성만 주장했다. 급박했던 당시의 행위를 지금 와서 범죄로 취급하는 게 옳은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이렇게 당하는 것을 '운명'이라 해야 하는가."     검찰 조사에서 모멸과 압박감을 느꼈다고 해서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그는 남아 있는 가족이나 친구, 선후배들에게 슬픔을 안겼다. 그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잠을 못 이뤘다.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    

 

[최보식이 만난 사람] "영장(令狀) 기각돼 오늘 휴대폰 돌려받고… 세종시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과의 生前 마지막 통화]

=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8.12.10 03:13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과의 生前 마지막 통화]

기억 안 나지만 다 인정하겠다, 시시콜콜 따져봐야 소용없어

그 상황서 사령관이 해야 할 직무의 정당성·적법성 주장했다

    ​

나는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됐다. 경찰에서 확인했듯이 통화 시각은 7일 오후 1시 29분이었다.

   

내가 전화를 걸었고 긴 신호음 끝에 그가 나왔다.

   

"아, 최 기자님…."

   

"며칠 전 전화를 했는데 안 받더군요. 그때 휴대폰이 검찰에 압수된 상태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예, 영장이 기각돼 오늘 휴대폰을 돌려받았습니다. 그동안 꼼짝 못 하다가 세종시에 있는 집사람(교사로 재직)이 바람도 쐴 겸 오라고 해서 지금 내려가 보려고 합니다."

   

"걱정 많이 했는데 그나마 다행입니다. 검찰에서 영장을 다시 청구하지는 않겠지요?"

   

"검찰이 이번에 영장이 기각된 대법관(박영대·고영한) 쪽으로 힘을 쏟지 않겠느냐고 변호사가 이야기는 했습니다…."

   

일상적인 대화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서 그가 말했다.

   

"실은 세종시에 가려고 막 집을 나서다가 제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기분 전환도 하시고."

   

이게 생전의 마지막 통화였다. 1시간 20분 뒤 그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시간 계산을 해보면 그때 그는 유서가 든 가방을 들고 자신이 살던 건국대 근처 오피스텔을 나서던 중이었던 것 같다. 이날 그는 자신의 변호인들에게도 "세종시에 내려가도 되느냐?"고 물었다고 하는데, 세종시로 가지 않고 서울 문정동에 있는 지인의 사무실로 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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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생전에“기무사가 이렇게 국민의 지탄을 받아야 하는 조직이었나, 나로서는 자괴감과 회의감이 들 정도다”라고 말했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생전에“기무사가 이렇게 국민의 지탄을 받아야 하는 조직이었나, 나로서는 자괴감과 회의감이 들 정도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DB

그는 박지만씨의 고교·육사 동기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누나'로 불렀다. 이 때문에 2014년 기무사령관으로 발탁됐을 때 여러 설이 돌았다. 마찬가지로 그가 1년 안 돼 경질됐을 때도 여러 풍문을 낳았다.

   

그를 알게 된 것은 2년 전이다. 군에서 예편한 뒤였다. 그에 대해 '정치군인' 선입견이 있었는데 만나보니 단정한 학자 같은 인상을 받았다. 직접 만난 건 두 번이지만 통화나 문자 메시지로 가끔 연락하는 관계가 됐다. 내가 신문에 쓴 글을 보고 시국 걱정을 표시해오는 경우도 있었다.

   

취재 목적으로 그와 길게 통화한 적은 한 번 있었다. 7월 31일이었다. 나흘 전 문재인 대통령이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과 계엄령 검토는 그 자체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이고 불법적 일탈 행위'라고 말하면서 국방부 특별수사단의 기무사 수사가 탄력을 받던 시점이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 의혹'이 기정사실로 굳어진 것 같다. 우선 기무사 요원들은 왜 세월호 현장에 있었나?

   

"당시 해군 등 전군(全軍)에서 병력과 장비가 대거 투입됐다. 군 병력이 움직이면 당연히 기무부대도 파견된다. 현장에서 군 임무 수행과 관련된 문제를 파악하고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는 게 역할이다. 세월호 사건 당시 군의 역할은 컸고 이 안에서 기무사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최선을 다했다. 이는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기무사 요원이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서 유족들의 정치 성향과 가족 관계, 음주 실태 등을 파악했고, 안산 단원고 학생을 뒷조사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군의 대민 지원과 관련된 여론과 동향을 파악 보고하는 것은 기무사의 직무에 해당된다. 이를 어떻게 민간 사찰이라 할 수 있나. 기무사는 민간 사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툭하면 그런 사건이 터졌고 이에 대해 문책을 받아왔기 때문에 '사찰하라'는 지시는 있을 수 없었다."

   

―이런 직무 활동이 왜 민간인 사찰로 의심받게 됐다고 보나?

   

"지역기무부대는 대형 재난 상황 발생 시 구성되는 범정부대책위원회의 당연직 멤버다. 실종자 가족들의 불편, 불만 또는 요구 사항도 파악해야 한다. 실종자 가족대책위의 활동을 수첩에 적고 위에 보고한 것을 사찰로 오해한다. 더욱이 이를 '가족대책위에 대한 동향'이라고 하니까 사찰 냄새가 나는 것이다. 이는 정보기관 특유의 관행이다. 내가 '동향' '동정'이라는 오해받을 만한 표현을 쓰지 말고 '상황' '분위기'라고 고치라고 한 적 있었다."

   

―민간인에 대한 불법 도·감청을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는 세월호 선사의 주인인 유병언의 소재를 찾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사용됐다. 법무부의 지원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다."

   

―기무사령관 시절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하러 청와대를 자주 들어갔다는데.

   

"한 번도 없었다. 독대하고서 그런 소리를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때는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 시스템이 없었다. 내 전임자 시절에도 없었다. 내가 나온 뒤로는 모르겠다."

   

―박지만씨 친구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누나'로 부르는 실세(實勢)였으니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독대를 했을 것으로 본다.

   

"그런 개인적인 연고를 들어 나를 엮으려고 한다. 1년 채 안 되는 기무사령관직은 군 생활에서 잊고 싶은 기간이다. 좋게 임기를 다 마친 것도 아니고 그 뒤로 무슨 혜택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현 정권에서 수사의 칼날을 피해갈 수 있다고 보나?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진 수사이니 언젠가는 나를 부를 것이다. 기무사가 비판과 오해받을 소지가 있지만 이렇게 뭇매를 맞을 조직이었나, 이렇게 국민의 지탄을 받아야 하는 조직이었나, 잠시나마 사령관을 맡았던 나로서는 자괴감과 회의감이 들 정도다."

   

―현 정권에서 벌어지는 소위 '적폐 수사'에서 대부분 인사들이 자기 입장을 밝히지도 못하고 구속됐다. 언론 보도는 검찰을 통해서 나오는 것들이다. 일방적 주장이 기정사실처럼 된다. 그런 상황을 막으려면 당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지 않겠나?

   

"기무사의 세월호 사건에서 내가 최종 지휘관인데 잘못 대응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가거나 직접 나설 상황이면 그렇게 하겠다."

   

이 통화가 있고 넉 달 뒤 그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그는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에 출두하면서 "모든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라고 말했다. 영장은 기각됐고, 나흘 뒤 그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변론을 맡았던 석동현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영장은 기각됐지만 검찰 조사는 끝나지 않았다. 당초 소환 조사를 할 때 검찰은 앞으로 어떤 조사를 할 것인지 통보했다. 이 중에는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과 관련된 것도 있었다. 비록 풀려났지만 장차 검찰이 주변까지 먼지 떨이식 수사를 벌일지 모른다는 압박감이 컸을 것이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뉴시스

―검찰 조사 과정에서 세월호 사건과 상관없는 '별건(別件) 수사'가 있었나?

   

"그는 군에서 예편한 뒤 블록체인 개발 회사의 고문을 맡았는데, 그 회사로부터 현재 거주하는 오피스텔을 받았다. 검찰이 오피스텔을 압수 수색하면서 그 사실을 알아내고 이에 대해 심문했다. 바로 다음 날에는 그 회사와 오피스텔 명의자에게 전화를 걸어 '왜 제공해줬느냐?'고 캐물었다. 불안해진 회사 측은 그에게 '오피스텔을 비워 달라'고 했다. 그도 자신의 문제로 회사에 불똥이 튈 것을 걱정했다. 영장실질심사 전날까지 그는 집을 구하러 다녔다."

   

―이를 두고 검찰이 '별건 수사'를 했다고 할 수 있나?

   

"오피스텔은 그와 회사 간의 계약이었고, 세월호 사건 조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물론 검찰은 '수사까지 할 계획은 없었다'고 발뺌할 것이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전역 이후 복잡한 정치 상황과 얽혀 제대로 되는 일을 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지금 모처럼 여러 비즈니스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즈음에 이런 일이 발생해 여러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있다.

   

―검찰 조사를 받으면 누구나 모멸감을 느끼게 마련이지만, 그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특히 정도가 심한 게 있었나?

   

"검사가 어떤 사안에 대해 '부하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한 적이 있느냐?' '지시한 적이 없었다는 말이지요?'라는 식으로 모두 진술하게 한 뒤 심지어 이를 직접 그의 손으로 쓰게 했다. 그리고 두세 시간 뒤 이 진술과 상반된 문건을 내밀며 그를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그 검사는 나름대로 뛰어난 심문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나?

   

"일반 형사 잡범을 상대로 그렇게 해왔는지 모르지만, 아무리 조사받는 피의자라 해도 기본 예의는 지켜줘야 하지 않나. 담당 검사는 30대고, 피의자는 군에서 평생을 바친 예비역 3성 장군이었다. 근거 자료를 제시하며 '이게 무엇이냐?'고 심문하는 게 상식 아닐까. 사실 사령관은 수많은 지시와 보고를 받는 자리다. 몇 달간 지속적으로 올라온 세월호 사건의 모든 보고서에 설사 그의 서명이 있었다 해도 다 기억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검찰 심문 과정에 직접 배석을 했나?

   

"후배 변호사가 배석했고 나는 보고를 다 받았다. 메모까지 갖고 있다."

   

―영장실질심사에서는 직접 변론을 했는데.

   

"검찰은 그 시기의 기무사 서버를 모두 들여다본 것 같았다. 실질심사 과정에서 검찰은 '6·4 지방선거 이전 국면 전환을 위한 출구 전략 마련' 등과 같은 정치적 해석의 소지가 있는 기무사 보고서를 화면에 띄우면서 설명했다. 그런 뒤 그가 출세 목적으로 세월호 유족 동향을 사찰하도록 지시했다고 연결지었다."

   

―지금 검찰은 위험한 집단이 됐다. 그는 어떻게 대응했나?

   

"기억이 안 나지만 조직에서 이런 지시와 보고가 있었다면 다 인정하겠다고 했다. 시시콜콜 따져봐야 소용없는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 사령관이 해야 할 직무의 정당성과 적법성만 주장했다. 급박했던 당시의 행위를 지금 와서 범죄로 취급하는 게 옳은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이렇게 당하는 것을 '운명'이라 해야 하는가."

   

검찰 조사에서 모멸과 압박감을 느꼈다고 해서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그는 남아 있는 가족이나 친구, 선후배들에게 슬픔을 안겼다. 그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잠을 못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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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4일 화요일

20181203 KBS2TV 월/화 드라마  땐뽀걸즈 오후10시~ #DanceSportsGirls 연출 #박현석 #유영은 ,극본 #권혜지 ,출연 #김갑수 #박세완 #장동윤 #이주영 외 #KBS #한국방송 구조조정이 한창인 쇠락하는 조선업의 도시 거제에서 '땐'스 스'뽀'츠를 추는 여상 아이들을 그린 8부작 성장드라마 전달 #KBS강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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