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아웅산 수지의 꽃 ( The flower of Aung San Suu Kyi) = 작성: 조선일보, 김민철 논설위원
=입력 : 2015.11.11
어제 아침 신문들은 미얀마 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총선 압승 소식과 함께 활짝 웃는 아웅산 수지 여사 사진을 실었다. 수지 여사는 여느 때처럼 뒷머리를 생화로 장식했다. 이번에는 분홍 장미다. 일흔 살 여인의 주름진 얼굴과 놀랍도록 잘 어울린다. 긴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고 머리띠에 화사한 꽃을 꽂은 모습은 그의 오랜 상징이다. 사람들은 아웅산 수지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머리 꽃을 떠올린다.
떠올린다.
▶아열대 지역 미얀마엔 여자들이 생화를 머리 장식으로 쓰는 문화가 있다. 수지 여사의 꽃은 그 이상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은 미얀마 독립 영웅이다. 아웅산은 미얀마 건국 직전인 1947년 정적(政敵)들에게 암살당했다. 수지의 두 살 생일이 막 지났을 때였다. 그날 아침 집을 나서던 아버지는 화단에서 난초 꽃을 꺾어 딸의 머리에 꽂아줬다. 뤽 베송 감독이 수지 여사 일대기를 그린 영화 '더 레이디'도 그 장면으로 시작한다.
▶수지 여사는 1988년 영국에서 귀국한 뒤 세 차례에 걸쳐 15년 가택 연금을 당했다. 영국인 남편이 숨졌을 때도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그 고난의 세월 속에서 간간이 바깥세상에 얼굴을 드러낼 때마다 그는 꽃을 꽂았다. 미얀마에 흔한 노란 퍼다우크부터 장미·난초까지 쉽게 구할 수 있는 꽃이다. 2013년 처음 방한했을 때도 그는 매일 아침 호텔방으로 장미꽃을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흰색·노란색·분홍색, 너무 활짝 피지 않은 꽃으로 열 송이씩 준비해 달라고 했다.
▶수지 여사는 아버지 아웅산 장군이 늘 그의 곁에 있음을 꽃으로 말했다. 군부 독재에 단호히 맞서되 폭력을 거부했던 그의 의지를 꽃에 담았다. 그런 수지 여사에게 세계는 노벨 평화상과 함께 '철의 난초(Iron orchid)'라는 별명을 안겨줬다. 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가 압승을 거뒀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한둘 아니다. 군부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고 수지 여사가 내년 2월 대선에 나가기도 쉽지 않다.
▶미얀마 헌법은 '외국 국적 배우자·자녀를 둔 국민은 대선에 입후보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개헌 의석을 확보하려면 선거에 관계없이 의석 4분의 1을 미리 차지한 군부가 동의해줘야 한다. 그러나 총선에서 분출한 미얀마 국민의 뜻은 누구도 거스르지 못할 만큼 거세다. 지난 27년 '수지의 꽃'은 민주화를 향한 열망의 꽃이었다. 수지 여사가 만개하지 않은 꽃을 꽂은 것도 그런 의미였을까. 이제 그 꽃은 미얀마 민주주의와 평화의 꽃으로 활짝 피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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