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 스웨덴( #Sweden)의 비밀 , #비그포르스(Ernst Johannes Wigforss) ‘페르 알빈 한손’( Per Albin Hansson) - 뉴스타파 #김진혁PD의 미니다큐 #Wigforss #페르알빈한손 #PerAlbinHansson
https://youtu.be/76Si3WJKodc
평범한 국민과 소통할 ‘대중 정치인’의 필요성
국민들과 가깝고 국민이 원하는 걸 알아내고
무엇보다 국민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대중 정치인’이 필요했다.
그때 눈에 띈 한 명의 정치인 ‘페르 알빈 한손’(Per Albin Hansson) 1885년 10월 28일 생 - 1946년 10월 6일
비록 학력은 초등학교 4년이 전부였고
사환.점원으로 살아온 최하층 노동자 출신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이유였다
최하층 노동자 출신이자 열렬한 축구팬이었던
그는 추상적 용어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대신
모든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복지국가를 설명한다.
스웨덴의 길 2부 ‘국민의 집’
훌륭한 집에는 “독식하는 사람도 없고 천대받는 아이도 없다.”
“다른 형제를 얕보지 않으며 그를 밟고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
“약한 형제를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를 가정에 빗대어 설명한 ‘국민의 집’
사람들은 한손의 설명에서 ‘가정’처럼 포근한 복지 국가를 떠올리다.
급진적이고 모험적이며 추상적인 이론만 앞세우는 무능한 이미지 대신
든든한 장남의 이미지로 거듭난 사민당
대공황의 절망 속에서 사민당의 복지 정책들은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후 치러진 총선(1932년)
국민들로부터 선택받는 한손과 사민당
이제 ‘총리’ 한손과 ‘재무부 장관’ 비그포르스로
본격적인 사회복지 정책을 펼칠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사민당에 맞서 똘똘 뭉치는 반사회주의 정당들(보수당, 자유당, 농민당)
사민당 정책의 핵심인 대규모 재정지출과 공공근로사업
한가지 방법으로
반 사회주의 정당의 가장 약한 고리인 농민당 끌어안기
사민당
수출산업의 급격한 발전에 맞춰 산업 전반의 합리적 조정이 시급했던 당시 스웨덴의 현실
전투적 대립이 아닌 ‘노사 협조’
사회 민주당과의 신뢰 속에서 자체적으로 건설 노조의 파업을 중지시키고
무엇보다 기존의 영향력을 굳건하게 유지하는 LO(스웨덴 노동자총연맹)그리고 1936년 당당히 재집권에 성공하는 사민당
사민당은 5년간의 수많은 토론 끝에 ‘노사분쟁은 정부의 개입없이 노사간 해결키로 합의(살트셰바덴 협약)
산업 평화
스웨덴의 경제는 급성장하기 시작한다.
이후 무려 44년간 집권하며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는 사민당
‘복지 국가’의 모범이 되는 스웨덴
비그포르스(Ernst Johannes Wigforss)(1881-1977) ‘이념’이 아닌 ‘사람’이 목적이다.
“인간이 자신들 생산도구의 주인이 되어야 하며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2017년 9월 19일 화요일
복지국가 스웨덴( #Sweden)의 비밀 , #비그포르스(Ernst Johannes Wigforss) ‘페르 알빈 한손’( Per Albin Hansson) - 뉴스타파 #김진혁PD의 미니다큐 #Wigforss #페르알빈한손 #PerAlbinHansson https://youtu.be/76Si3WJKodc 평범한 국민과 소통할 ‘대중 정치인’의 필요성 국민들과 가깝고 국민이 원하는 걸 알아내고 무엇보다 국민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대중 정치인’이 필요했다. 그때 눈에 띈 한 명의 정치인 ‘페르 알빈 한손’(Per Albin Hansson) 1885년 10월 28일 생 - 1946년 10월 6일 비록 학력은 초등학교 4년이 전부였고 사환.점원으로 살아온 최하층 노동자 출신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이유였다 최하층 노동자 출신이자 열렬한 축구팬이었던 그는 추상적 용어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대신 모든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복지국가를 설명한다. 스웨덴의 길 2부 ‘국민의 집’ 훌륭한 집에는 “독식하는 사람도 없고 천대받는 아이도 없다.” “다른 형제를 얕보지 않으며 그를 밟고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 “약한 형제를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를 가정에 빗대어 설명한 ‘국민의 집’ 사람들은 한손의 설명에서 ‘가정’처럼 포근한 복지 국가를 떠올리다. 급진적이고 모험적이며 추상적인 이론만 앞세우는 무능한 이미지 대신 든든한 장남의 이미지로 거듭난 사민당 대공황의 절망 속에서 사민당의 복지 정책들은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후 치러진 총선(1932년) 국민들로부터 선택받는 한손과 사민당 이제 ‘총리’ 한손과 ‘재무부 장관’ 비그포르스로 본격적인 사회복지 정책을 펼칠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사민당에 맞서 똘똘 뭉치는 반사회주의 정당들(보수당, 자유당, 농민당) 사민당 정책의 핵심인 대규모 재정지출과 공공근로사업 한가지 방법으로 반 사회주의 정당의 가장 약한 고리인 농민당 끌어안기 사민당 수출산업의 급격한 발전에 맞춰 산업 전반의 합리적 조정이 시급했던 당시 스웨덴의 현실 전투적 대립이 아닌 ‘노사 협조’ 사회 민주당과의 신뢰 속에서 자체적으로 건설 노조의 파업을 중지시키고 무엇보다 기존의 영향력을 굳건하게 유지하는 LO(스웨덴 노동자총연맹)그리고 1936년 당당히 재집권에 성공하는 사민당 사민당은 5년간의 수많은 토론 끝에 ‘노사분쟁은 정부의 개입없이 노사간 해결키로 합의(살트셰바덴 협약) 산업 평화 스웨덴의 경제는 급성장하기 시작한다. 이후 무려 44년간 집권하며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는 사민당 ‘복지 국가’의 모범이 되는 스웨덴 비그포르스(Ernst Johannes Wigforss)(1881-1977) ‘이념’이 아닌 ‘사람’이 목적이다. “인간이 자신들 생산도구의 주인이 되어야 하며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