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7일 일요일

KBS기독신우회 #로마서강해,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한 사람’, #서문강 목사 ( #중심교회 ) 2016.11.25.(금) #KBS기독신우회 금요예배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식’을 공부하고 있다. 우리의 구원 시작부터 완성까지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방식의 연속이다. 성도들 중에서 최고의 성화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하는 사도 바울이 무어라 했는가? [고린도전서]15: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I Corinthians]15:10 But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and his grace to me was not without effect. No, I worked harder than all of them--yet not I, but the grace of God that was with me. 로마서 5장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의 구원의 확실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칭의’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법리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자신과 새로운 관계에 돌입한 사람으로 여기신다. 성령께서는 사도로 하여금 그긋을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개념으로 이해하게 가르치셨다. [고린도후서]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이제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에 돌입하였다. 여기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하였는데 “하나님의 화평(peace of God)”이 아니고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peace with God)”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우리의 구원의 확실성은 우리 자신의 행함의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곧 그리스도와 그 이루신 구속(救贖, )의 효력이 달린 것이다. ‘구원의 확실성’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다 하신 판결’의 영원한 효력 안에 있다. ‘구원은 받았으면서도 구원의 확신이 희미해’ 질 수도 있다. 그런 차원에서 유다는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라고 하였다. 우리가 지상에 있는 동안 ‘연약’에 휩싸여 있어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큰 복’에 대한 인식이 모자랄 수 있다. 반면에 주제넘게 주어지지도 않았는데 주어진 것 같이 자랑하다가 심판 날에 ‘불법의 사람’으로 발견될 수도 있다. ‘구원의 확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를 보는 영적 눈을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상급‘이다. [이사야]40: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Isaiah]40:31but 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renew their strength. They will soar on wings like eagles; they will run and not grow weary, they will walk and not be faint. 여호와를 앙망하는 믿음의 사람이 그 실제를 이끌어가는 은혜의 방편이 ‘말씀’과 ‘묵상’과 ‘기도’이다. 그 사람의 심령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그렇게 인도하시어 새 힘을 주시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영성’을 가지게 하시는 것이다.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에게 이 사실을 선포적으로 상기시키고(우리 자신에게 설교는 거룩한 습관으로), 이 사실에 대한 우리의 참된 믿음의 반응을 끌어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서 있는 영역은 ‘은혜의 나라’이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권리’를 얻었다는 말이다. [롬]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롬]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환난 => 인내 => 연단 => 소망’ 사도는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의 소망의 줄기를 붙들면 그 환난이 우리에게 손해가 아니라 우리의 소망을 더 이루어나가는 촉매제가 된다’고 말한다.

KBS기독신우회 #로마서강해,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한 사람’, #서문강 목사 ( #중심교회 ) 2016.11.25.(금) #KBS기독신우회 금요예배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식’을 공부하고 있다.
우리의 구원 시작부터 완성까지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방식의 연속이다.
성도들 중에서 최고의 성화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하는 사도 바울이 무어라 했는가?
[고린도전서]15: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I Corinthians]15:10 But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and his grace to me was not without effect. No, I worked harder than all of them--yet not I, but the grace of God that was with me.
로마서 5장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의 구원의 확실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칭의’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법리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자신과 새로운 관계에 돌입한 사람으로 여기신다.
성령께서는 사도로 하여금 그긋을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개념으로 이해하게 가르치셨다.
[고린도후서]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이제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에 돌입하였다. 여기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하였는데 “하나님의 화평(peace of God)”이 아니고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peace with God)”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우리의 구원의 확실성은 우리 자신의 행함의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곧 그리스도와 그 이루신 구속(救贖, )의 효력이 달린 것이다.
‘구원의 확실성’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다 하신 판결’의 영원한 효력 안에 있다.
‘구원은 받았으면서도 구원의 확신이 희미해’ 질 수도 있다. 그런 차원에서 유다는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라고 하였다. 우리가 지상에 있는 동안 ‘연약’에 휩싸여 있어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큰 복’에 대한 인식이 모자랄 수 있다. 반면에 주제넘게 주어지지도 않았는데 주어진 것 같이 자랑하다가 심판 날에 ‘불법의 사람’으로 발견될 수도 있다.

‘구원의 확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를 보는 영적 눈을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상급‘이다.

[이사야]40: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Isaiah]40:31but 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renew their strength. They will soar on wings like eagles; they will run and not grow weary, they will walk and not be faint.

여호와를 앙망하는 믿음의 사람이 그 실제를 이끌어가는 은혜의 방편이 ‘말씀’과 ‘묵상’과 ‘기도’이다. 그 사람의 심령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그렇게 인도하시어 새 힘을 주시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영성’을 가지게 하시는 것이다.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에게 이 사실을 선포적으로 상기시키고(우리 자신에게 설교는 거룩한 습관으로), 이 사실에 대한 우리의 참된 믿음의 반응을 끌어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서 있는 영역은 ‘은혜의 나라’이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권리’를 얻었다는 말이다.

[롬]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롬]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환난 => 인내 => 연단 => 소망’
사도는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의 소망의 줄기를 붙들면 그 환난이 우리에게 손해가 아니라 우리의 소망을 더 이루어나가는 촉매제가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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